▲ 이 재 광 제천시체육진흥과

하늘나라여행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은 아닌가요,

아버지께서 하늘로 떠난 지 어언 칠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어머니의 꿈속에서나마 한번쯤 돌아오세요. 홀로 사시는 어머니가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이제 그만 여행하시고 돌아오시면 안 되나요?

칠순을 맞이하는 어머니, 외롭고 쓸쓸히 지내시는 어머니, 얼마 남지도 않은 여생을 편히 사셔야 할 텐데...... 어머니에게 저희와 같이 살자고 간곡히 몇 번이나 말씀드렸는데, 아니다 형이 있는데 어찌 둘째인 너의 집에 살겠니. 한사코 싫다하시고는 아직은 당신 혼자 지낼 수 있다고 하시며 대신에 관리비와 생활비만 너희들이 부담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당신이 거동 못할 때, 그때 가서 버리지 말고 잘 거두어 달라시며 내 마음을 아리게 하십니다.

칠순을 맞으신 어머니를 보고 있노라니 아버지 생각이 더욱 간절합니다. 하늘여행을 하시다가 동짓달 초엿새, 내려오셔서 허전한 어머니 옆자리에 앉으셔서, 살아생전에 결혼식 주례보시고, 인자한 모습으로 하객들에게 인사하시고, 평소에 좋아하시던 약주도 마음껏 드시고 덩실덩실 어깨춤에 어머니 한 번 꼭 안아 주시면 좋으련만,

아버지!
어머니께서 오늘따라 무척 외롭고 쓸쓸해 보여요. 우연히 고추시장골목을 지나다가 어머니께서 고추를 다듬고 계시는 모습을 보면, 나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어머니에게 들킬세라 얼른 돌아 나오곤 한답니다. 아버지께서 조금만 늦게 떠나셨어도 저렇게 고생을 덜 하실 텐데, 아버지 살아생전에 집안에서 자식들 뒷바라지와 살림뿐이 모르던 어머니...
험한 밖의 일을 해보지 않으셨던 어머니, 오직 남편의 그늘에서 가족만 위하여 해바라기 사랑으로 지내시던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하늘로 떠난 후에 그리움을 굵은 주름살 속에 감추고 계십니다. 오늘은 그 주름살 속에 감추어졌던 그리움이 내 눈에는 한없는 외로움으로 비쳐집니다.

옛날 어머니께서 수술을 받던 날, 내 나이 열두 살 되던 해에,
어머니는 제 손을 꼭 잡고 ??내가 수술하다가 죽으면 아버지하고 잘 살아야 해. 아버지 말씀 잘 듣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하시며 수술실로 들어가셨습니다. 어린 제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시는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수술이 끝날 때까지 잔디밭 은행나무 아래에 쪼그려 앉아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수술이 끝난 후에는 눈꺼풀이 퉁퉁 부어서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동란 때에는 중대장으로 근무하며 육군축구대표선수까지 지내셨으며, 제대하시고 공무원 신분인 동장 일과 축구협회 회장직을 맡아보시며 건강한 몸과 정신을 잃지 않으셨던 아버지께서, 인생말년에 사기꾼들에 의해 모든 재산을 다 잃으시고, 내 앞으로 논 열 마지기, 형님 앞으로 열두 마지기를 유산으로 남겨두려던 것까지 몽땅 날아갔으니, 괴로워 술을 매일 마시며 실의에 잠겼다가 당신은 기어이 하늘로 떠나셨습니다. 이런 일을 예상하셨던 것 같았습니다. 생전에 유서를 남기셨으니 얼마나 통곡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식들아,

너희들이 이 편지를 볼 때에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자식들아, 너희들에게는 너무 미안하구나. 사랑스런 딸 재경아 이 못난 아비를 용서해다오. 너에게 뭐라고 할 말이 없구나. 부디 시집가거든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지 말고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여라.

그리고 사랑하는 당신,

무엇으로 감사의 글을 남겨야 할지 모르겠소. 평소에 당신이 좋아했던 털옷 한 벌을 마련했소. 늙어 갈수록 고운 옷을 입어야 한다고 당신이 늘 말했잖소. 장롱 속 보자기에 쌓여 있으니 입고 올 겨울을 따스하게 지내며, 자식들과 재미있게 외출도 하고 화목하게 오래오래 사시오.
다음 생에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높이 떠받들고 살고 싶소. 당신을 많이 사랑했다오. 부디 자식들과 여생을 행복하게 살아요. 하늘나라에서 우리 가족을 지켜보리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흐르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사죄의 마음이지 보고픔인지, 아니면 어머니의 외로움을 보다 못해서 생기는 불효자의 눈물인지 나 자신에게 반문해 봅니다.

아버지!
조금 있으면 겨울이 다가오는데 아버지가 계신 곳은 태양이 가까워 춥지는 않으시겠죠. 그곳에서라도 드시고 싶으신 것을 잘 챙겨 드시고 이승에 계실 때처럼 안주 없이 약주만 드시지 말아 주세요. 스스로 아버지 몸을 잘 챙기셔야 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둘째 아들이 이렇게 큰소리로 외쳐도 백운산 자락의 메아리로 되돌아옵니다. 너무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께서 칠순을 맞이하는 날, 하늘나라에서 아니 내려오셔도 괜찮습니다. 저희들이 어머니를 둘러싸고 따듯한 마음으로 있을 것입니다. 아무 걱정 마시고, 하늘나라를 훨훨 날아 편히 여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