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제천중학교장

이  성  범

며칠전 세 살난 손주 녀석으로부터 퇴근하자마자 참으로 귀한 선물을 받았다. 글쎄 퇴근해 현관문을 열자마자 그 녀석은 나를 보자 두 팔을 벌리고는 하지! 하지는 그가 말하는 할아버지의 약자다.
아직 말을 잘 못해서 제 깐에는 이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이거 받아요” 하며 비닐봉지에 무엇인가 담겨있는 물건을 불쑥 내민다. 너무 소중한 나머지 비닐봉지에 있는 선물이 망가져 버릴까봐 제 딴에도 조심 또 조심하여 비닐봉지를 살며시 열고 살짝 꺼내어 그 귀한 선물을 나의 볼에 그리고 코에 대어보기도 한다.
그래 너무 고맙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여 받아보니 다름 아닌 노오란 은행잎과 붉게 물든 단풍잎을 주어 담은 것이다. 다시 물어보니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가까운 공원에 다녀왔다는 것이다. 하도 궁금하여 그녀석의 알림장을 보니 공원에 가서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낙엽을 주우며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놀이도 했다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예쁜 사진도 함께 붙어있었다.
 
참으로 감사했다. 선생님들께 말이다. 어린아이에게 지성보다는 먼저 감성으로 그리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코로 냄새 맡아 보고, 그래 이것이야말로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정겨움이 넘치는 작은 체험학습이 아니고 무엇이랴.
불현 듯 나의 어릴 때 아름다운 추억이 뇌리를 스치곤 한다. 나도 어릴 때 노오란 은행잎을 주어 책갈피에 넣어 보고했던 아름다운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 버린다. 어디 은행잎뿐이리오 단풍잎도 그리고 이름 모를 예쁜 나뭇잎이면 그렇게 했으니까 말이외다.
그런데 요즘 아침에 출근하여 교정에 들어서면 우리 학생들이 선생님들과 함께 낙엽을 빗자루로 쓰느라고 고사리 같은 손을 때로는 비벼가며 수고를 많이 한다. 나도 함께 쓸기도 하고 줍기도 하고 치워보기도 하지만 괜히 속이 상하다. 너무 많이 낙엽이 쌓여서 어쩔 수는 없지만 조금만이라면 마냥 동심으로 돌아가 학생들과 함께 낙엽을 밟아 보기도하고 또 그 낙엽 밟는 소리를 통해 자연의 소리를 가슴으로 느껴보고 싶기 때문에 굳이 쓸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혹자는 가을이 가는 길목이라는 제하의 글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삭풍 불어 겨울이 오기 전, 여행을 떠나는 낙엽처럼, 파란 하늘아래 발길 옮겨, 하얀 종이위에 팬을 들면, 가을은 물감처럼 스며든다. 품속을 파고드는 서늘한 바람, 두 팔 벌리고 눈 감으면,가슴에 묵었던 상념의 조각. 넓은 호수 같은 하늘로 올라, 떠다니다가 고운 단풍들어, 추억의 책갈피에 앉는다.
참으로 이 노래를 음미하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가을의 정겨움에 흠뻑 젖어들곤 한다. 어쩌면 오늘날이야말로 어느 때보다도 우리아이들에게 자연 친화를 통한 감성교육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한다.

이러한 자연 친화를 통한 감성교육은 첫째, 몸을 살리는 교육이다. 요즘에는 첨단의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주로 시각과 청각을 혹사시킴으로써 그 외의 감각은 정체되어버리는 아이들이 많다. 이에 비해 자연 친화를 통한 감성교육은 자연을 보고 듣고 느끼고 냄새 맡고 함으로써 인간의 오감을 살리는 교육이다.
둘째, 자연은 아이들의 내면세계의 폭을 넓게 해준다. 오래전에 일이다. 우리 반 옆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각자 작은 화분에 식물을 심어오게 하여 일 년 간 관찰하고 기르게 하여 그 식물과 무언의 대화를 통해 내면의 세계를 넓게 함은 물론 학급 창문을 이용하여 수세미를 길러 마치 그 교실에 들어가면 어느 식물원에온 것처럼 아늑하고 무언가 생동감이 넘치는 느낌을 받아 무척 부러울 때가 있었다.
이 또한 정서적인 안정과 사랑이 깃든 대화를 통하여 나만의 세계를 넓혀가는 것이다. 
셋째, 자연은 아이들에게 무엇인가 만들어보고자 하는 의욕을 불러일으켜준다. 요즘에는 주로 만들어진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에게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뭇가지나 돌멩이 같은 것도 모두 장난감이 될 수 있다. 그러기에 나뭇가지가 칼이 될 수 있고 지팡이가 될 수도 있고 돌이 비석이 될 수 도 있고 집의 벽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는 땅도 막대기로 선을 그으면 세계지도가 될 수 있고 자기 소유의 재산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 어른들에게는 집 앞 거리도 늘 보는 거리지만 아이들과 함께 다니다보면 새로움이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아이들은 콘크리트 한켠에 핀 새싹에 다가가기도 하고, 집 앞 과일가게에 전에 있던 복숭아, 수박이 없어지고 감이나 사과가 있음으로 인해 아이들은 이런 새로움을 통해 무엇인가를 발견할 줄 아는 능력이 길러지기도 한다.
이처럼 자연친화적인 교육은 자연과의 관계회복을 도모함은 물론 보고, 만지고 느끼는 체험활동을 통해 심미감을 발달시켜 우리의 감성발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어느새 교정에 어둠이 쉽게 드리운다. 이제 또 다른 계절의 새 손님을 맞아야 할 때인가 보다. 가을이 가는 길목에서 자연을 통한 우리의 진솔한 감성을 조화로운 인성교육으로 더욱 승화시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