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제천중학교장

 이   성    범

참으로 지리한 장마속에 긴 여름은 우리의 마음을 무척 시리게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조석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이것은 머지않아 가을이 다가옴을 알려주는 전령사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요즘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듯 세월이 유수라고 하는 그 말이 실감나게 합니다. 하는 수없이 세월에 동참하기 위해 오랜만에 먼지 앉은 책상을 정리도 해보고 전에는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았던 책에 살며시 다가가 책을 꺼내 책장을 넘겨보기도 합니다. 마침 얼마 전에 읽었던 내용이 너무나 감명적이기에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러시아 출신의 첼리스트 피아티고르스키(1903-1976)가 데뷔할 때 그의 앞에는 파블로 카잘스라는 거장인 첼리스트가 앉아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피아티고르스키는 긴장한 나머지 자신이 무엇을 연주하는 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연주를 했습니다. 이렇게 정황이 없는 가운데 연주가 끝나자 카잘스는 예상과 달리 열렬한 박수를 그에게 보내주었습니다. 피아티고르스키는 영문도 모르고 의아했습니다. 훗날 그 역시 일류 첼리스트가 되어 카잘스와 대면했을 때 넌지시 그에게 그때의 일을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막 데뷔할 때 선생님 앞이라 당황해서 연주하는 도중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열렬한 박수를 보내셨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카잘스는 자기의 첼로를 가져와 그때의 곡을 정확히 켜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세 번 째 음은 내가 오랫동안 고민해 찾고 있던 음일세. 그때 자네가 그음을 아주 훌륭하게 연주해 낸 것이네. 나는 자네 때문에 음 하나를 배운 것이지. 백 개의 음 가운데 아흔아홉 개의 음이 좋지 않더라도 하나의 음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바로 내 스승일세. 나는 내 스승에 대해 열렬히 박수를 보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 했을 뿐이네.
이 말을 들은 피아티고르스키는 크게 감동하여 일생동안 이 말을 그의 인생의 교훈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평생교육의 실천가였던 공자는 論語 述而 21에서 세 사람이 함께 걸어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焉 )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혹자는 "결코 아는 자가 되지 말고 / 언제까지나 배우는 자가 되어라." / "마음의 문을 닫지 말고 / 항상 열어두도록 하여라." / 졸졸 쉴 새 없이/흘러내리는 시냇물은 썩지 않듯이. / 날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언제나 활기에 넘치고 /열정으로 얼굴에 빛이 납니다. /라고 노래했습니다.
참으로 배움에 대한 겸허한 마음가짐이 우리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주는 글들입니다. 무릇 현명한 사람이란 모든 사람과 모든 일에서 늘 배우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결코 박식한 사람만이 현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삶의 태도는 부단히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일 것 입니다. 결코 배움에는 구별이 없습니다. 진정 부끄러움은 배우기를 꺼려하는 것이지 몰라서 배우는 것은 오히려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모름지기 유능하고 위대한 인물은 배움에 겸손하고 열정을 가지고 부단히 배우고자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배움의 기쁨, 깨달음의 환희, 이것이 우리의 삶을 살찌우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