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大暑)가 다가서니 수박과 참외가 한창 무르 익어간다.
오늘은 닷새마다 열리는 읍네 장날이다.
부모님은 수박과 참외를 따다가 읍네 장에 내다 파실려고 꼴뚜 새벽 수박밭으로 가셨는지 집안이 조용하다.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 야! 해가 중천에 떴는데 아직도 안 일어나고 여직껐 자뻐져 자냐 "
나보다 열 살이나 위인 누나는 어머니 대신 집안 살림을 도맡아서 하는데 우리에게는 저승사자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라서 화들짝 일어나 눈에 매달려 있는 눈꼽을 손등으로 때어내고는 옆을보니 나보다 세살이 위인 큰 형은 팬티만 걸치고는 누나가 깨우는 소리를 못 들었는지 네 활개를 벌린체 세상모르고 백호야 하고 쿨쿨 잔다.
잠자는 형을 발로 툭툭 걷어차면서 " 형! 호랑이년 왔다 부지깽이로 매타작 당하기전에 얼른 일어나라 "  
" 너 시방(방금) 뭐라고 그랬냐?" 금방이라도 방으로 뛰어 들어와서 부지깽이가 등줄기에서 춤을 출듯 치켜들고는 도끼눈을 뜨고 반문을 한다. 
귓가리가 밝아서 혼자 구시렁거린 "호랑이년"소리를 얼핏 들은 모양이다.
" 하품이 나오려는 것을 참느라고 호! 한 소리야 " 얼른 둘러대고는 잠자는 형을 깨우는척 형을 마구 흔들어 대면서" 큰 형! 누나가 빨리 일어나래 어서 일어나라 "큰 형도 누나가 왔다는 소리에 눈을 번쩍 치켜뜨고는 방문 앞에 서 있는 누나를 보더니 번갯불치듯 화들짝 일어 나서는 잘잤다는듯 두 손을 치켜들고는 아가리가 찢어져라 하품을 해 댄다.
" 너희들 셋 셀동안에 호박과 가지따러 안가면 부지깽이로 다섯대씩 맞을 줄 알아라 "
때린다면 때리는 누나인지라 셋소리가 나오기전에 밖으로 나가려고 일어서는데 " 하나, 둘, 둘반.... " 나는 맞지 않으려면 삼십육계가 최고다.
화들짝 밖으로 뛰쳐나와 호박밭으로 꽁지가 빠져라 도망질을 치자
큰형도 매타작이 겁이 나는지  윗옷은 입지도 못하고 손에 들고는 천둥벌거숭이처럼 팬티차림으로 허둥지둥 내 뒤를 따라 오면서 " 야! 같이 가자 "자다가 일어나서 도망을 치려니 숨이 찮지 곧 숨이 넘어 갈듯 헐떡거린다.
형과 같이 가려고 멈춰서서 기다리자 가쁜 숨을 헐떡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 선 형은" 야! 식전 아침부터 호랑이년이 왜 저 지랄이냐?"
" 그러게 말이여 다른 누나들은 동생들이 귀여워서 죽겠다고 난리들인데 우리 누나는 우리를 못잡아 먹어서 안달복달을 하니 원수도 저런 원수가 없다 "
" 형아야! 오늘 부모님이 장으로 수박 팔러가시고 나면 우리를 또 쥐잡듯 하겠지?"
" 아침부터 하는 꼬라지를보니 오늘 호랑이 한테 매타작 당하지 않으려면 사고치지 말고 말 잘 들어야겠다 "
" 형!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아버지따라서 장구경이나 갔으면 좋겠다 "
" 아버지 한테 장구경 한 번만 시켜달라고 때 좀 써 볼까? "
" 그래라 형! 그러면 누가 아냐 장에 데리고 갈지 "
대답 대신 고개를 끄떡이는 형의 표정은 장 구경을 하고 싶어서 끄떡이는 것이 아니라 누나 등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끄떡이는 것 같다.
호박과 가지를 따기 위해서 수박밭으로 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느새 소달구지 가득 수박과 참외를 따서 싣고 계시다가 우리를보고는 반색을 하시면서" 너희들이 오늘은 어쩐 일이냐?"
" 누나가 호박과 가지 따오래요 "
" 어린 동생들한테 별 걸 다 시키는구나 "
아버지는 누나가 못마땅 하다는 듯 구시렁 거리신다.
" 호박과 가지는 내가 따놨으니 어여 가지고 가거라 " 어머니께서 호박과 가지가 담긴 다래끼를 형에게 건내주신다.
다래끼를 받아 어깨에 맨 형이 아버지 앞으로 다가서더니 " 아버지 우리도 아버지따라서 장 구경가면 안 될까?"
" 날씨가 푹푹찌는데 장에 뭐 볼게 있다고 장 구경을 간다는거냐?"
" 오늘은 일요일이니 장구경 한 번만 시켜주세요 "
" 어제 숙제하라고 했더니 오늘 한다고 안 했냐?"
" 숙제는 장구경하고 와서 하면 되니 장구경 좀 시켜주세요 "
" 볼 일도 없이 장구경은 무슨 장구경이야 " 아버지는 일언지하에 안 된다고 거절을 하신다.
" 으앙! " 형은 때를 써 볼참인지 닭기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울음보를 터트린다.
" 너 아버지말 안들으면 누나한테 일러 준다 "
누나라면 꼼짝도 못하는 줄 아시는 어머니께서 협박을 하신다.
" 데리고 가기 싫으시면 말지 누나한테 치사하게 이르기는 왜 일러요 "
누나한테 이른다는 소리에 형이 울음을 뚝 그치더니 다래끼를 매고는 힘 없이 돌아서자 그 모습을 보신 아버지께서 형을 부른다.
" 찬호야! 이리 와 보거라 "
아버지께서 형을 부르건만 형은 듣고도 못들은척 비적비적 걸어가자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들고는 " 이걸로 더울때 아이스께끼나 사 먹어라 "
호랑이 같은 누나가 무서워서 장구경 시켜달라고 때를 쓰다가 결국 아이스께끼 사 먹으라고 돈을 주시는 바람에 아이스께끼 유혹을 뿌리치질 못하고 장구경은 도로아미타불이 되고야 말았다.
아침상을 물리자 부모님께서는 소달구지를 끌고는 읍네 장으로 수박을 팔러 가시고 누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하면서 숙제 끝네 놓고 놀러가라고 감시라도 하듯 우리에게서 눈을 때지 않는다.
형과 나는 마루에 걸터 앉아서 아이스께끼 장사가 오기만을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 아이스께끼!  아이스께끼! "
자전거에다가 얼음통을 싣고는 아이스께끼를 파는 께끼장사의 구성진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 든다.
" 형아! 께끼 장사 왔다 "
우리는 누나의 눈치를 살피면서 일어서는데 " 너희들 숙제 안하고 어딜가려고 일어서냐?"
" 날씨가 더워서 개울가서 목욕하고 올게 "
" 아직 아침이라 별로 덥지도 않은데 무슨 놈에 목욕을 벌써부터가냐?
빨리 들어가서 숙제부터 해 놓고 한 낮 되면 목욕하러 가라 "
누나의 말은 곧 법이다.
법을 거역했다가는 불벼락이 떨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 일이다.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아이스께끼 생각에 입가득 고인 군침을 삼키면서 하는 수 없이 숙제를 하러 방으로 들어 갔다.
" 형! 아이스께끼 장사가 가면 어떻게 하지?"
" 그러게 말이여 아무리 호랑이 같이 무섭다고 해도 그렇지 아이스께끼도 마음 놓고 못 사 먹게 하냐"
" 빨리 시집이나 갔으면 좋겠다 "
" 저렇게 호랑이 같은년을 누가 데려가겠냐 "
" 숙제 하는 동안에 께끼장사가 가면 어떻게하냐?
"형! 누나한테 아버지가 아이스께끼 사먹으라고 돈 준 이야기를 할까?"
" 미쳤냐 그런 이야기를 호랑이한테 하게"
" 그럼 아이스께끼를 사서 우리끼리 먹잖 말이여?"
" 우리를 쥐잡듯하는 누나가 뭐가 예쁘다고 같이 먹냐 "
우리는 숙제를 하려고 방 가득 숙제물을  펼쳐 놨지만 글씨는 눈에 들어오지를 않고 아이스께끼만이 눈 앞에서 아른거린다.
" 야!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 형! 누나 몰래 내가 나가서 케키 사 올까?"
" 들키면 어쩌려고?"
" 안 들키면 되잖아 "
" 안 들 킬 자신 있냐?"
" 걱정말아 우리가 어디 누나를 한 두 번 속였냐 "
형은 팬티주머니속에 깊숙하게 쑤셔 넣은 돈을 꺼내서 내게 건네 주면서
" 들키지 않게 사와야 한다 "
형은 내가 미덥지 못한지 다시 한 번 신신당부를 잊지 않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