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풍이 나뭇가지 끝에서 춤을 추듯 노닌다.
“윙윙” 울어대는 울음소리가 듣기 좋은지 가지사이를 넘나들면서 한참을 그렇게 노닐다가 간다.
삭풍이 떠난 가지에는 나무의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온 멧새 한 마리가 무슨 일인가 궁금하다는 듯 꽁지를 깝죽거리면서 또 한참을 울다가 간다.
재수가 좋은 날은 눈꽃을 가지가 휘늘어지도록 피워서 멋을 부리는 날도 있지만 오늘처럼 재수없는 날은 울보가 되기도 한다.
겨울이 무르익어 가듯 가을에 담근 김치도 지금쯤은 무르익었겠지?
독한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를 하듯 이렇게 날씨가 매섭게 추운 날은 익은 김치를 꺼내다가 만둣국 끓여서 술 한 잔 곁들이면 금상첨화인데...
오늘같이 추운 날은 소여물을 써는데 제격이다.
요즘 젊은이들이야 여물을 썬다는 것이 무슨 소리인가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삼십여 년 전만해도 소들도 사람처럼 소죽을 끓여 먹여서 키웠다.
지금은 농기계의 발달로 소는 농사일에서 저만큼 밀려나 닭장 속에서 닭처럼 인간들이 고기를 얻기 위해 키우지만 예전에는 소가 없이는 농사를 못 지었기에 소는 그야말로 칙사 대접을 받았다.
물론 가난했기에 인간들이 먹고 살아갈 식량이 부족한 탓도 있기는 하지만 소는 본래 초식동물이기에 풀을 먹여서 키우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닌가?
소들에게 물어볼 수가 없어서 그렇지 소들이 말을 한다면 아마도 사료대신 소죽을 끓여달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여물을 써는 날은 작두부터 시퍼렇게 날이 서도록 갈아 놓아야 한다.
벼타작을 하듯 작두 옆에는 볏짚과 바짝 마른 고구마넝쿨, 옥수수대, 건초, 조짚, 콩깍지 등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혼자서 써는 작은 작두도 있지만 소여물 썰때는 둘이서 써는 큰 작두로 썬다.
한사람은 작두 앞에서 앉아서 여물거리를 작두 속으로 밀어 넣고 또 한사람은 작두에 올라서서 발로 작두를 밟아 여물을 썬다.
처음에는 추운 날씨에 거시기가 얼어 달그락 달그락 요랑소리가 나지만 한참을 썰고나면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이마에서는 줄줄 땀방울이 흐른다.
여물을 썰면서 마장터에 편안하게 앉아서 눈을 지그시 감고는 되새김질을 하는 소를 흘끔거리고 볼라치면 여물을 써는 우리를 보고 빙그레 옷기도 한다.
쟁기질을 할 때는 두눈을 부라리면서 입에는 거품을 물고 씩씩거리면서 힘들어서 못살겠다고 가끔씩 골패기도 부리지만 지금은 여물을 써는 우리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듯 하다.
한나절을 썰고 나면 소 한 마리가  한달은 배 두드려 가면서 먹을 수 있는 양이 된다.
누군가 메주를 쑤려고 콩을 삶는지 구수한 메주콩 삶는 냄새가 난다.
지금이야 모두 다 옛이야기가 돼 버렸지만 겨울이 익어가니 메주를 끓일 때다.
깨끗하게 콩을 씻어서 가마솥에 넣고는 콩깍지로 메주 끓이면 온 동네가 구수한 메주콩 내음으로 익어 갔는데 어머니 몰래 메주콩 훔쳐서 중 염주처럼 실에 꿰어 걸어 놓고는 한알  한알 빼어 먹는 맛은 참으로 꿀맛이었는데...
그러다가 메주콩이 떨어지면 동태 눈알 파 먹 듯 메주를 파먹다가 어머니에게 들켜 경을 친 적도 있었지.
겨울이 익어갈 무렵 뭐니 뭐니 해도 입맛을 돋우는 것은 수수부꾸미가 제격이다.
솥뚜껑 엎어서 걸어 놓고는 굽는 수수부꾸미 맛도 좋지만 냄새 또한 코에 엄청난 자극을 준다. 언제인가 시골 촌부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사랑방에 누웠는데 구수한 냄새가 콧속으로 솔솔 파고들어 방문에 뚫린 문구멍으로 밖을 내다보니 며느리가 수수부꾸미를 굽고 있더란다.
군침을 삼키면서 이때나 저때나 며느리가 부꾸미를 가져올 때만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다.
시아버지는 괘씸한 생각이 들어 고자가 처갓집 드나들 듯 방문에 눈을 내다 걸고는 침만 줄줄 흘리면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아들이 나무를 한 짐 해가지고 와서는 곧장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수수부꾸미를 하나 덥석 집어들고는 맛있게 먹더란다.
부꾸미는 먹고 싶어 죽겠지만 체면 때문에 나오지도 못하고 군침만 삼키면서 속만 끓이고 있는데 그때 마침 이웃으로 마실을 갔던 시어머니가 오더니 “시아버지도 갖다 드렸냐?” 고 묻자 며느리 왈 “많이 구워서 갖다 드릴려고 아직 안갖다 드렸어요.” “미련한 것 같으니라고!”
시어머니는 주섬주섬 부꾸미를 담아 개다리 밥상에 얹어 들고는 시아버지 방으로 들어가니 그 모습을 본 시아버지가 밖에서 부꾸미를 먹고 있는 아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야 임마! 너만 마누라가 있냐? 나도 마누라가 있다.” 했단다.
겨울꽃이 피려는지 하늘이 낮게 내려앉으면서 잿빛구름이 하늘 가득 몰려오고 날씨가 좋은 날은 들리지 않던 기적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온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멧새들이 바삐 날아간다.
멧새들은 눈이 내릴 것을 미리 알아보고는 먹이를 찾아서 마을로 내려오는 모양이다.